봄이 오고 있다 순간 순간 마다에, 김봉조 작가의 수필 탐하기

봄꽃들이 경쟁하듯 피기 시작했으니 이젠 다 자란 청춘의 봄이다

이현수 기자 | 기사입력 2020/04/01 [16:00]

봄이 오고 있다 순간 순간 마다에, 김봉조 작가의 수필 탐하기

봄꽃들이 경쟁하듯 피기 시작했으니 이젠 다 자란 청춘의 봄이다

이현수 기자 | 입력 : 2020/04/01 [16:00]

사월의 시작과 더불어 읽기 편한 김봉조 작가의 수필 한 편 펼쳐보기

 

[강건문화뉴스 이현수 기자] 도둑맞은 시간처럼 벌써 4월이다. 사십 이후라야 꽃이 보인다는 작가 김봉조를 만나 그가 쓴 수필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 봄 >피천득

4월 첫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수필 한 편을 읽다 든 생각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글쓰기의 기본 명제 같은 말이다. 좋은 글은 개별적인 모든 존재들이 갖고 있는 사유의 샘에서 맑은 생각을 길어 올리게 하고, 때로는 새로운 영감을 안겨주는 짜릿한 경험을 주기도 한다. 난 산문에 관심이 많은데 요즘 다른 일에 몰두하다 보니 좋은 수필을 읽을 짬을 내지 못했다. 내 글을 쓰는 것 못지않게 좋은 글을 읽고 사유하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삶의 즐거움이자 배움이다.

 

시간이 되면, 생각날 때마다 불규칙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종종 마음에 와 닿는 수필이 있으면 포스팅할까 한다. 수필은 시와 달리 분량이 길기 때문에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장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황순원 선생이 “산문은 나이 들어서 쓰는 것이다. 산문은 인생을 담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일상 속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되새기고, 타인을 통해 자신에게 성찰의 질문을 던져주는 글일 수도 있다.시간이 한가할 때 읽어 보면 좋겠다.

 

오늘은 피천득선생의 <봄 >을 함께 읽어보자. 금아는 많은 수필을 남긴 분은 아니다. 일년에 3~4편 정도 수필을 썼는데 한 편에 기울이는 그 정성과 노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북쪽 울 동네에도 봄꽃들이 경쟁하듯 피기 시작했으니 이젠 다 자란 청춘의 봄이다.

 

▲ 김봉조 작가의 작품 사진, 봄  © 이현수 기자


< 봄 >피천득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나같이 범속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둔한 옷을 벗어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곧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발치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젊음을 다시 가져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헤어진 애인이 여자라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러졌거나 둘 중이요,남자라면 낡은 털자켓 같이 축 늘어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시뻘개지고 눈빛이 혼탁해졌을 것이다.

 

젊음은 언제나 한결 같이 아름답다.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아무리 높은 지혜도 젊음만은 못하다.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사십까지라는 말이다.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93퍼센트가 사십 미만의 인물들이다.그러니 사십부터는 여생인가 한다.사십 년이라면 인생은 짧다.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면 그리 짧은 편도 아니다.

 

‘나비 앞장 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나비는, 작년에 왔던 나비는 아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지만, 그 제비는 몇 봄이나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키이츠가 들은 나이팅게일은 사천 년 전 루스가 이국 강냉이 밭 속에서 눈물 흘리며 듣던 새는 아니다.그가 젊었기 때문에 불사조(不死鳥)라는 화려한 말을 써본 것이다.나비나 나이팅게일의 생명보다는 인생은 몇 갑절이 길다.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이러한 봄을 사십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은 아니다.더구나 봄이 사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幽閉)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 봄이 오고 있다.순간마다 가까워오는 봄.

 

<김봉조 작가 프로필>

▲ 수필가 김봉조   © 이현수 기자

 

- 한양문학 2020 봄호 ‘수필 부문’ 신인상 수상

-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졸

- 현대종합상사(주) 근무

- 현재 중소기업 재직 중

 

GCN 이현수 기자

suya65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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